[종의 기원] 지질학의 짧은 역사
지금 읽고 있는 <종의 기원> 9장 "지질학적 기록의 불완전함"과 관련하여 지구의 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 둘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제임스 어셔 주교(James Ussher 1581-1656)는 지구가 창조된 것은 4004 BCE 10월 23일 (일요일) 정오라는 주장을 남겨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제임스 어셔 주교(James Ussher 1581-1656) 그림 출처: wikimedia]
이 이상한 연대는 기독교 성서의 기록에 따른 것입니다.
“아담의 족보는 이러하다. 아담은 백삼십 세 되었을 때, 자기와 비슷하게 제 모습으로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 셋은 백오 세 되었을 때, 에노스를 낳았다. ... 노아의 나이 오백 세 되었을 때, 노아는 셈과 함과 야펫을 낳았다.” (구약성서 창세기 5장 및 11장)
이 구절의 마지막은 아브라함인데, 아브라함으로부터 소위 솔로몬의 성전까지의 시간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계산합니다. 이렇게 계산하면 아담이 태어난 것이 예수가 태어나기 전보다 약 4000년 전이 됩니다. 예수가 태어난 무렵을 서력의 기원으로 삼아서 지구의 탄생(창조)까지 주장하게 된 셈입니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어셔 주교의 서술은 납득하기 어렵지만, 실상 이 작업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1650년에 출간된 어셔의 저서 제목은 Annales Veteris Testamenti, a prima mundi origine deducti, una cum rerum Asiaticarum et Aegyptiacarum chronico, a temporis historici principio usque ad Maccabaicorum initia producto로서 다양한 방식으로 성서연대기를 추적한 것이었습니다.
어셔와 같은 시대에 살았다고 할 수 있는 요하네스 케플러도 이와 비슷한 연대기 계산을 통해 신이 세상을 만든 것이 BCE 3992년이라고 계산했고, 아이작 뉴턴도 BCE 약 4천년이라는 계산을 남겼습니다. 17세기 유럽 기독교 문화권에서 이런 서술은 터무니 없는 엉터리가 아니라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던 셈입니다.
아이작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1687)가 출판된 이후 뉴턴의 자연철학을 바탕으로 지구의 나이를 산출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1684년에 처음 나와 1690년까지 개정되어 출간된 토머스 버넷의 <지구의 이론>[Thomas Burnet, The Theory of the Earth (1684-1690)]에서는 죽은 별에서 지각이 생겨나고 구약성서에 있는 노아 대홍수와 같은 대격변이 일어난 뒤 불규칙한 모양의 대륙이 생겨나며, 여기에 다시 불이 붙어 별이 된다는 나름의 이론이 제시되었습니다.
1696년에 윌리엄 휘스턴(William Whiston 1667-1752)은 <새로운 지구 이론>(William Whiston, A New Theory of the Earth (1696))에서 6일 동안의 세계 창조, 대홍수, 대격변을 기독교 성서에 쓰인 대로 그러면서도 이성과 철학에 완벽하게 합치함을 보이는 논의로 격상시켰습니다. 이는 뉴턴의 이론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혜성이 지구에 거의 충돌할 뻔 해서 대홍수가 일어났다면서 노아 대홍수를 물리적 사건으로 서술했습니다. 휘스턴은 신학자이자 수학자이면서 자연철학자이고 또 역사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아이작 배로우와 아이작 뉴턴을 이어 케임브리지 대학의 제3대 루카스 수학석좌교수에 오른 사람이기도 합니다.
조르주 루이 르클레르 또는 뷔퐁 백작(Georges-Louis Leclerc, Comte de Buffon 1707-1788)은 <자연사> 또는 <박물지>로 번역되는 대작 Histoire naturelle, générale et particulière, avec la description du Cabinet du Roy (1749–1788)을 남겼습니다. 생전에 36권이 출간되었고 사후에도 8권이 더 출간되었습니다. 뷔퐁은 뉴턴주의를 추종했으며 자연사를 물리학으로 설명하려 했습니다. 34권인 Des Époques de la nature (1779): Histoire naturelle. Tome. 34에서 지구의 나이에 대해 서술합니다.
[조르주 루이 르클레르 또는 뷔퐁 백작(Georges-Louis Leclerc, Comte de Buffon 1707-1788) 그림 출처: wikimedia]
지구는 태양에 혜성이 충돌하면서 튕겨 나온 찌꺼기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지구는 처음 매우 뜨거운 공과 같았으나 점차 식어서 지금처럼 차가워졌다고 가정하고, 쇠로 만든 공의 냉각시간을 측정해서 지구의 나이를 7만 4832년으로 계산했습니다. 뷔퐁의 ‘지질학’에서 시간은 뜨거웠던 지구가 식어간 것으로부터 알 수 있습니다. 해양후퇴론을 주장했는데, 바다 밖의 땅은 바람 때문에 침식과 풍화되었으며 찌꺼기들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 쌓였다고 보았습니다. “더 아래에 있는 것이 더 오래 된 것”이라는 오래된 법칙도 뷔퐁에게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코끼리’(매머드)의 화석을 보면 열대 지역의 생물들이 고위도 지역에도 번성했다는 언급도 있습니다.
독일의 자연학자 베르너(Abraham Gottlob Werner 1749-1817)는 초기 지구가 바다로 가득 차 있었으며, 흙이 바다에 쌓여서 암석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지질학(geology)이라 말을 처음 만든 것은 스위스의 소쉬르(Horace-Bénédict de Saussure 1740-1799)입니다. 1779년에 출간된 <알프스 여행 Voyage dans les Alpes, précédé d'un essai sur l'histoire naturelles des environs de Genève>에서 지질학(géologie)이라는 새로운 학분 분야는 "사실들을 모아 그로부터 지구의 이론에 대한 기초를 삼는 과학이며, 물리적 지리학 또는 지구의 서술로서, 지구의 자연적 분류, 지구의 다른 부분의 본성, 구조, 상황 등을 다루며, 표면에 드러난 것으로부터 우리의 미약한 수단으로 심층부까지 관통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19세기로 가면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가 남아메리카의 지질을 탐사했고, 스위스-프랑스 접경의 쥐라 산의 지층으로부터 주라층(Jurassic)이라는 이름을 제안했습니다. 윌리엄 스미스(William Smith), 조르주 퀴비에(Georges Cuvier), 알렉상드르 브롱니아르(Alexandre Brongniart) 등이 지층 연구에서 주된 기여를 했습니다.
지질 시대의 구분은 세지윅(Adam Sedgwick) & 머치슨(Roderick Impey Murchison)의 공로로 봅니다. 이들은 캄브리아기 Cambrian period, 실루리아기 Silurian period를 제안했고, 필립스(John Phillips)는 1841년 고생대 Paleozoic era, 중생대 Mesozoic era, 신생대 Cenozoic era를 구별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퀴비에 Georges Cuvier (1769-1832)나 버클런드(William Buckland)가 화석 등을 “홍수의 잔재”로 여기면서 다중 창조설, 즉 매 시대마다 모든 생명체가 멸종했다는 격변설을 주장한 반면, 허튼 (James Hutton 1726-1797)은 수성론과 격변설은 종교적 교조라고 비난하면서 동일과정설을 주장했습니다. 허튼은 역사적 지질학 창시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는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침식 작용을 중시 여겼으며, 비, 바람, 혹한 등의 풍화 작용을 강조하면서, 화산과 지구의 내부 열이 새로운 땅을 생성하는 동력이라고 보았습니다. 동일과정설에서는 지구의 나이가 매우 오래 되었다고 봅니다.
이를 계승한 것이 바로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입니다. <지질학 원론 (Principles of Geology)>(1830-33)에서 동일과정설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다양한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화산, 지진, 침식 등을 설명하면서, 급격한 변화처럼 보이는 것도 오랜 시간 축적된 결과임을 주장했습니다. 라이엘은 에오세, 미오세, 플리오세를 구분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지질학의 시대 구분은 꽤 정교하면서도 복잡합니다. 보통 초등과학교육에서 지질시대를 시간순으로 암기하게 만드는데, 맥락도 없이 서사도 없이 무조건 암기하게 하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런 암기가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닌 듯 싶습니다.
아래 표는 지질 시대 이름이 모두 들어 있는 국제지질연대층서표입니다.
[출처: 국제층서위원회 https://stratigraphy.org/ICSchart/ChronostratChart2023-04Korean.jpg ]
지질시대에 대한 더 자상한 설명은 가령 "지질시대와 황금못 (네이버 연재)"[https://shorturl.at/swQU6]이 유익합니다.
IV-1. 지질시대는 무엇? https://shorturl.at/dAJOTIV-2. 선캄브리아시대: 지구 탄생 이후 40억 년 https://shorturl.at/gnQY9
IV-3. 에디아카라기: 동물의 출현 https://shorturl.at/ehlOQ
IV-4. 캄브리아기: 동물의 폭발적 출현 https://shorturl.at/ntyJ3
IV-5. 오르도비스기: 진정한 의미의 고생대 시작 https://shorturl.at/kKPT3
IV-6. 실루리아기: 육상생태계의 등장 https://shorturl.at/mFX59
IV-7. 데본기: 어류의 시대 https://shorturl.at/pHRTZ
IV-8. 석탄기: 울창한 수풀의 시대 https://shorturl.at/gpsD7
IV-9. 페름기: 고생대를 마감한 시대 https://shorturl.at/jtzT7
IV-10. 트라이아스기: 중생대의 시작 https://shorturl.at/cF136
IV-11. 쥐라기: 공룡과 소철의 시대 https://shorturl.at/cgrsW
IV-12. 백악기: 꽃의 출현과 공룡 멸종 https://shorturl.at/dkyOS
IV-13. 고진기(Paleogene): 따뜻한 기후의 시대 https://shorturl.at/deITU
IV-14. 신진기(Neogene): 넓은 초원의 등장 https://shorturl.at/egiyH
IV-15. 제4기: 빙하시대 https://shorturl.at/flFJN
IV-15α. 지질학자의 관점에서 본 인류세 https://shorturl.at/sMNU3
IV-16. 한반도의 지질시대 https://shorturl.at/hADLV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요즘 항간에 자주 거론되는 '인류세(Anthropocene)'는 국제층서위원회에서 아직 공인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2019년에 Anthropocene Working Group에서는 인류세를 인정하는 쪽으로 투표가 이루어졌지만, 아직까지도 공식적인 지질시대 이름으로 올릴지 여부는 여전히 논쟁 중이라고 합니다.
지질시대에 따라 핵심적인 사항을 정리해 둔 아래 그림이 유용합니다.
[그림 출처: Pearson Prentice Hall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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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잘 읽어보겠습니다. \^^/
위에 적은 내용은 제가 강연이나 강의에서 사용하는 슬라이드의 내용을 문장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림도 슬라이드에 있는 것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이 내용을 올리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따로 글을 쓸 시간을 찾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내용의 정확성을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라도 틀린 서술이 있으면 바로잡겠습니다.
작년에 표기법이 바뀌었다고 들었어요.
과거에 사용하던 신생대 '제3기/제3계'라는 용어가 없어지고
'고진기(古進紀)/고진계(古進系)'와 '신진기(新進紀)/신진계(新進系)' 둘로 나뉘어졌다고 해요.
고생대 '석탄기'에서 '미시시피아아기'는 '미시시피 아기(=亞紀)라고 해요.
지질학교수님 페이스북에서 읽었습니다. ^^
아하, 그게 작년에 바뀐 건가요? 위에 링크를 달아 둔 "IV-13. 고진기(Paleogene): 따뜻한 기후의 시대" https://shorturl.at/deITU에도 어떻게 '고진기'와 '신진기'라는 이름이 도입되었는지 상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처음 '미시시피 아기(subperiod)'와 '펜실베니아 아기'라는 이름을 보았을 때, 지질학 시대에 미국 지명이 들어가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아무래도 지질학이라는 과학 분야가 유럽에서 만들어진 것이라서 신대륙은 좀 달랐을 것 같다고 생각한 탓이겠습니다.
찾아보니 국제층서위원회 자료 중 2008년 것에도 제3기(Tertiary)가 아니라 고진기(Paleogene)/신진기(Neogene)로 되어 있습니다. https://bit.ly/42n0PWE 작년에 바뀌었다는 것은 아마 한국어 용어에 대한 이야기인 모양입니다.